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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통신 | 싱가포르에서 맞붙은 美·中…IT 전쟁으로 승부 가린다
- 분류 IT-통신
- 항목 칼럼
- 작성자 KORDOTSIN
- 작성일20-06-22 12:02
- 조회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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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가 미국과 중국 기업의 접전지로 부상하면서 동남아 시장 진출 교두보인 싱가포르의 위상이 높아졌다.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이 한쪽을 버리고 다른 한쪽을 택해야 하는 세상이 올 수 있다. 그것이 빨리 오지 않기를 바란다.”
2018년 11월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는 아세안 정상회의 당시 이렇게 말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하면 동남아 국가들이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불편한 상황에 놓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리셴룽 총리가 우려했던 일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다. 미국은 반중 경제협력체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국도 내수 경제를 기반으로 점차 세력을 확장하겠다는 입장이다. 전 세계 경제 지도가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될 위기다.
다만 싱가포르 입장에선 우려가 호재가 됐다. 동남아가 미국과 중국 기업의 접전지로 부상하면서 동남아 시장 진출 교두보인 싱가포르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 본사가 다수 위치한 홍콩이 홍콩 보안법 시위로 위기를 겪으면서 싱가포르가 최적의 대안이 됐다.
미국과 중국이 동남아에서 맞붙은 이유는 시장 잠재력 때문이다. 동남아는 인구가 6억 명이 넘지만, 아직 인터넷 이용률이 낮다. 구글, 테마섹홀딩스, 베인앤드컴퍼니가 발표한 ‘이코노미동남아(e-Conomy SEA)’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 국가들의 인터넷 시장 규모는 2019년 1000억달러(약 120조1000억원)에서 2025년 3000억달러(약 360조3000억원)로 세 배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中 ‘동남아 러시’…첫 해외 지사는 싱가포르에
중국 정보기술(IT) 기업은 싱가포르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5월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는 싱가포르의 중심업무지구(CBD)에 있는 50층짜리 빌딩 ‘악사 타워(AXA Tower)’의 절반을 12억달러(약 1조4400억원)에 매입했다. 2017년 이후 아시아에서 이뤄진 상업 거래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알리바바의 첫 해외 부동산 투자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알리바바는 이 건물을 첫 해외 지사로 낙점할 예정이다. 악사 타워는 2016년 알리바바가 인수한 전자상거래 기업 라자다의 본사다. 라자다는 동남아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동남아의 아마존’으로 불린다. 싱가포르에서 라자다를 발판 삼아 동남아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알리바바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알리바바는 라자다 이외에도 싱가포르 전자상거래 기업 레드마트를 인수하고 인도네시아 전자상거래 유니콘(기업 가치가 1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신생 기업) 토코피디아에도 투자했다.
동영상 소셜미디어 ‘틱톡’을 운영하는 바이트댄스도 올해 싱가포르 지사의 규모를 확대한다. 바이트댄스는 2018년 12월부터 싱가포르 위워크 사무실에 입주했다가 올해 CBD에 있는 약 5500㎡(약 1685평) 규모의 빌딩을 임대했다.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해 틱톡이 이 공간을 본사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틱톡은 현재 중국과 미국에 사무실을 두고 있지만, 별도의 본사는 없다.
중국의 인공지능 스타트업 ‘센스타임’, 온라인 여행 플랫폼 ‘C트립’,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 ‘YY’, 통신사 ‘차이나 텔레콤’도 모두 싱가포르에서 사무실 공간을 늘리거나 인원을 충원할 계획이다.
“美 주도권 뺏길라” 견제하는 구글·아마존
사실 싱가포르는 미국 기업의 텃밭이었다. 미국은 2000년대 들어 연간 싱가포르 해외직접투자(FDI) 금액이 가장 많은 국가다. 2018년 FDI 금액은 581억3200만싱가포르달러로 중국(19억7500만싱가포르달러)의 29배에 달한다. 투자 금액의 대부분은 전자 제조업이지만, IT 서비스 기업도 2010년대 들어 대거 진출했다.
중국 기업의 공세에 미국 기업은 긴장한 모습이다. 아마존은 2017년 싱가포르에서 유료 회원 서비스 ‘프라임 나우’를 출범했지만, 고전했다. 알리바바의 라자다에 밀려 시장 점유율이 높지 않았고, 그간 판매 품목은 식료품과 일용품에 한정됐다. 지난해 들어서야 아마존은 싱가포르 전용 사이트 ‘아마존닷에스지(Amazon.sg)’를 개설하면서 반격을 시작했다.
인프라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기업도 있다. 구글은 2011년과 2015년 두 개의 데이터센터를 싱가포르에 세운 이후 2018년에 한 번 더 데이터센터 확충 계획을 발표했다. 8억5000만달러(약 1조208억원) 규모다. 페이스북은 2018년 싱가포르에 지사를 세운 이후 10억달러(약 1조2010억원)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다. 아시아 지역의 첫 데이터센터다. 트위터는 2월 소프트웨어, 데이터 과학 등을 연구하는 엔지니어링센터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글로벌 부동산 그룹 세빌스의 애슐리 스완 싱가포르 담당 전무는 영국 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양국 IT 기업이 동남아 진출의 발판으로 싱가포르를 낙점했다”면서 “중국 기업이 지난 2년 동안 동남아를 집중 공략하면서 싱가포르가 미·중 IT 기업의 전쟁터가 됐다”고 말했다.
5G 사업 향방이 美·中 승패 갈라
싱가포르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국’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리셴룽 총리는 6월 5일 현지 신문 스트레이츠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중대한 이해관계를 지닌 상주 권력으로 보고 있다. 동시에 중국은 눈앞의 현실”이라면서도 “아시아 국가들은 두 국가 중에 한 곳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싶지 않다”고 했다.
변수는 싱가포르의 5세대 이동통신(5G) 사업이다. 싱가포르는 현재 전국적인 5G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지 통신사 스타허브와 M1이 사업자로 선정됐는데 이 기업들은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의 장비를 이용할 계획이라고 알려졌다. 화웨이는 전 세계에서 5G 특허가 가장 많다. 반면 미국은 5G 기술력을 갖춘 반도체 업체가 없다.
싱가포르에서 화웨이의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화웨이는 약 1000만달러(약 120억원)를 들여 싱가포르에 클라우드·AI 혁신 랩을 열었다. 미국이 각국에 화웨이 ‘보이콧’을 요구하고 있는 만큼 5G 사업을 기점으로 싱가포르도 선택의 기로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