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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생활 | [13탄] 유럽여행 때 기억, 그리고 내가 한국인 이라는 거

  • 분류  싱생활
  • 항목  일반
  • 작성자   David Choi
  • 작성일18-01-30 16:02
  • 조회  2,239
  • 댓글  0

본문

"저기요 혹시 한국인이세요? 저 좀 도와주세요"
 
유럽여행을 하고 있을 때, 야간열차를 타고 체코에서 이탈리아로 들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침대칸에서 나와 잠시 복도에 서있는데, 한 한국인 여성분이 다급하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사연을 들어보니, 잠든 사이에 지갑이 든 소형백을 누가 훔쳐 갔다는 것이다.
나는 야간열차를 탔을 때 거의 잠을 자지 않거나,
잠을 잠시 청하더라도, 백의 모든 지퍼에 소형 자물쇠를 걸어놓고, 백 자체를 난간에 와이어로 고정시켜 놓는다.
조금 과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혹시라도 불미스러운 일을 당해서 곤욕을 치르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이게 낫다.
아무튼 부랴부랴 열차 보안요원을 찾아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런데, 보안요원의 말이 가관이었다.
누가 훔쳐 갔는지 정확한 증거나 목격자 없이 본인들도 승객 한명한명을 수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보안요원들의 입장을 어느 정도 이해 하면서도,
지갑을 도난당한 열차의 승객에게 최소한의 책임과 공감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정말 속이 상했다.
다행히 친한 친구가 로마에 살고 있다는 이 여성분의 말씀에,
로마에 도착하자 마자 친구분과 만나실 수 있도록 전화통화를 도와 드리고,
택시비 정도의 약간의 현금을 건네 드린 후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외국에서 만나는 한국인은 때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때로는 같은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고 꺼려질 때가 있고,
때로는 같은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정말 반갑고 위안이 되는 때가 있다.
같은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고 꺼려지는 상황이란.. 뭐랄까...
이방인으로써의 특권(?)을 만끽해보고 싶은 어떠한 장소나 공간에서
갑자기 또 다른 한국인이 등장하게 되면, '여기에서도 한국인을 만나는구나' 하는 약간의 실망감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그래도,
외국에서 한국인을 만나는 것이 불편하고 꺼려지는 경우 보다는,
외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모국(母國) 대한민국과 한국인의 소중함을 더욱 새롭게 느끼는 경우가 더욱 많다.
 
 
결국 나의 국적과 언어는 나의 정서적인 고향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싱가폴 친구들과 교제를 하고 우정을 쌓으려 노력을 해도,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대화를 할 때 느껴지는 감정전달의 한계와 답답함이 분명히 존재한다.
그렇기에 머나먼 이국땅에서 나의 모국어로 대화하고 관계를 쌓을 수 있는 동포를 만난다는 것은 정말 소중한 일이다.
싱가폴에서 경제적으로 잘 자리를 잡으신 한국인 한 분을 만난 적이 있었다.
한창 우리나라가 경제성장을 하던 시기에 무역회사의 주재원으로 싱가폴에 나오셨다가,
성장하는 자녀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싱가폴에 정착을 하게 되었는데,
이미 영주권도 받은지 오래 되었고, 시민권 초청 레터도 받은 적이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싱가폴 정부에서 시민권 초청 레터를 보냈는데,
계속 시민권 신청을 거부하면 추후 영주권 갱신에도 불이익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영주권이 갱신되지 않으면 여러모로 불리해지는 점이 많이 생기게 되지만,
이 분 께서는 싱가폴 시민권을 얻기 위해 대한민국의 국적을 버리는 것을 차마 못하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결국 언젠가는 고향에 가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을 떠나려고 애를 쓴다.
헬조선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게 되었고 '탈 대한민국의 시도'가 끊이지 않는듯 하다.
 
참 아이러니 한 것은,
막상 외국에 있는,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싱가폴에 있는 한국인들 중에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는 한국인들이 은근히 많다는 것이다.
한국에 있는 한국인들은 외국을 동경하고,
외국에 있는 한국인들은 다시 한국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씩 한국을 굉장히 혐오하고,
이 곳에서까지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비난하는 분을 만나게 된다.
물론,
어느 나라에서 살 것인지, 어떤 나라의 국적을 취득할 것인지,
또 대한민국을 비판하든지 말든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혹시 국적이 바뀌었다면, 적어도 우리의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뉴스로 접하거나,
한국의 정치와 경제가 혼란스럽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친구들 생각에 여전히 걱정스러운 마음을 느낄 때가 많이 있다.
만약, 한국에 전쟁이 일어나서 대한민국이 초토화되고 폐허가 된다고 상상 해보자,
나는 무사히 목숨을 건졌으니 천만다행인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모국이 폐허가 되거나 경제적 위상이 추락하게 되면,
외국에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인들의 삶 또한 함께 무너지는 것이다.
이렇게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삶도, 모국 대한민국의 운명과 결코 분리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살고 있는 많은 한국인들이 도리어 은근한 애국자가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 또 한 가지 드는 생각은 내가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이 참으로 재미있는 운명들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혹시라도 '그러면 한국에 다시 들어와서 살지 왜 외국에서 계속 살고 있느냐?' 라고 묻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실제 외국에 살고 있는 한국분들 중엔,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서 여유가 있는 분들도 있지만,
1년에 한번 한국에 다녀오는 가족들의 비행기표와 여행경비를 모으기 위해 치열하게 저축을 해야 하는 분들도 계신다.
 
싱가폴에서 인턴 경력을 쌓고 있거나 저임금 서비스업에 종사하면서,
거꾸로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아 다시 돌아가기 위해 열심히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 분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도...
그리고 싱가폴에서도...
우리와 같은 서민들의 치열한 삶은 똑 같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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